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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다시 길 위에서>는 최백호가 12년 만에 결심한 여행이다. 기타리스트 박주원,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등 젊은 뮤지션들이 보탠 멜로디도 근사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한숨같고 속삭임 같은 보컬의 힘이다. 어느 순간, 최백호는 60대의 몸에 깃든 청년처럼 노래하는데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시들지 않을 것 같은 푸르고 고집스러운 기운이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읽힌다. 그런가 하면 아이유는 앳된 얼굴로 깊은 감정을 들려주는 스무 살이다. 그가 무대 위에서 기타를 퉁기며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을 때, 익숙했던 곡은 새로운 표정을 얻었다. 서로를 눈여겨보는 후배와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 두 사람이 의자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40년 이상의 터울을 둔 두 뮤지션은 이외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최백호와 아이유는 음악이 자신들의 전부는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 두 분은 전에도 만나신 적이 있으신지요. 방송국 대기실에서 아이유가 최백호 선생님의 팬인 아버지를 위해 사인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아이유 같이 노래방에 가면 ‘낭만에 대하여’를 특히 자주 부르셨어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도 좋아하시고요. 덕분에 또래들과 달리 선배님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정말 많이 들었어요. 

- 지난 여름 콘서트에서도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지요? 사실 스무 살의 여자 뮤지션이 닿기는 쉽지 않은 정서일 텐데요. 
아이유 그전까지 가사를 곱씹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콘서트 준비를 하면서 찬찬히 읽었는데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곡 안에 담긴 마음을. 그래서 너무 어려웠어요. 솔직히 아직도 다 이해는 못하겠어요. 
최백호 그게 당연하지. 
아이유 네. 정말 어려워서... 어렸을 때는 그냥 막연히 좋다는 느낌만 갖고 들었거든요. 

- 최백호 선생님께서는 눈여겨보는 후배 뮤지션으로 아이유를 여러 차례 언급하셨습니다. 어떤 점이 특별해 보이신 건가요? 
최백호 사실 전 아이유 노래를 잘 몰라요. 그냥 오며 가며 들은 정도지. 그런데 언젠가 기타를 들고 나와서 이문세의 ‘첫사랑’을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낭만에 대하여’도 그렇지만 30~40대는 되어야 공감할 수 있는 가사인데 능청스럽게 참 찰 하더라고. 이렇게 젊은, 아니 젊다기보다는 어린 좋은 가수가 나와주면 반갑죠. 요즘 곡들은 너무 상업화되고 한쪽으로면 치우친 느낌이에요. 음악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좀 더 필요해요. 게다가 싱어송라이터라는 점도 좋아 보이고. 

- 새 앨범인 <다시 길 위에서>에서는 처음으로 후배 뮤지션들의 곡을 받아 부르셨습니다. 이런 시도를 하신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최백호 제가 만드는 노래가 너무 일상이 되어버렸거든요. 탈피하고 싶다는 욕심을 늘 갖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와서 이거다 하고 매달렸지요. 


- 원래 글을 먼저 쓰고 곡을 붙일 정도로 노랫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손아래 후배가 쓴 것 중 특히 마음에 들었던 가사를 꼽으신다면요? 

최백호 ‘길 위에서’란 곡 2절 가사가 너무 좋았어요. ‘푸른 하늘 위로 웃음 날아오르고/꽃잎보다 붉던 내 젊은 시간은 지나고.’ 지금도 노래를 부르다 이 대목이 나오면 가슴이 뭉클해요. 


- 아이유도 앨범을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음악적으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어떤 걸까요? 

아이유 자작곡을 많이 수록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런데 곡을 쓰다 보면 제 부족함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거든요. 부분부분은 괜찮은 거 같은데 모아서 전체적으로 들어보면 ‘이거 뭐 이상한데...?’ 이렇게 되요. 진짜 멀었다는 생각은 하는데 그러면서도 곡 만드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회사와 조율할 문제가 생기고요. 앨범이라는 게 콘셉트도 중요하잖아요? 제 생각만 고집하기는 어려워요. 

최백호 곡 쓰면 다 그래요. 밤에 쓸 때는 끝내주는 것 같았는데 아침에 들어보면 엉망이야. 

아이유 으하하, 맞아요. 밤에는 다 너무 좋아요. 

최백호 그런 생각을 갖는 게 맞아요. 밤에 써놓은 걸로 아침에도 자아도취에 빠지면 문제가 있는 거지. 


- 지금의 아이유 나이, 즉 스무 살 무렵 선생님께서는 어떤 게 고민이셨을까요? 

최백호 그 무렵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스무 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까. 그래서 그냥 군대에 가버렸지요. 그런데 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제 인생에서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나이 먹고 나서 깨달았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힘든 시간이 필요해요. 일부러 찾아 다니면서 겪을 수야 없겠지만. 


-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최백호 사람의 경험이 음악에 다 나오거든요. 힘든 시간을 겪지 않고서는 사람의 가슴을 치는 노랫말이나 멜로디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해요. 


- 선생님은 후배들의 의례적으로 존경하는 선배라기보다는 팬으로서 좋아하는 뮤지션에 가깝습니다. 목소리의 힘이 워낙 크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백호 특별히 관리하지는 않는데 음색이 잘 보존된 것 같긴 해요. 사실 저는 젊을 때보다 더 좋아졌다고 느껴요. 자기 최면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종종 제 목소리에 지칠 때가 있어요. 내가 부른 노래가 듣기 싫어져서 아예 몇 개월씩 음반을 안 틀기도 해요. 


-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최백호 모르겠어요. 그런 시기가 간혹 오더라고요. 


- 한 인터뷰에서 음악이 선생님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이유 와 

최백호 내 경우만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하나에만 묶이는 게 싫어요. 실제로 가수를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지금이라도 누가 찾아와서 그만 노래하라고 하면 오케이! 하면서 관둘지도 몰라요. (그래도 중요한 일부는 되지 않을까요?) 정말 중요한 일부죠. 저한테는 가족 같아요. 아내, 딸, 그리고 음악이 그냥 같이 사는 거예요. 

아이유 아까 와, 하고 놀란 게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음악이 저에게 전부는 아니라고요. 그런데 어디 가서 이렇게 말하면 혼날 줄 알았어요. 내가 건방진 건가, 미치는 게 맞는 건가, 생각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음악이 다는 아니더라고요. 다른 중요한 것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팬들이 섭섭하다고 해요. 전 어느 순간 음악이 싫어지면 다른 걸 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편이라서요. 


- 최백호 선생님께서는 음악을 가족에 빗대셨습니다. 아이유에게는 어떤 걸까요? 

아이유 제게는 일종의 현실 도피에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건 잠깐 그 스토리에 빠지는 경험이잖아요. 음악도 만들거나 듣거나 부를 때만큼은 잠깐 현실에서 달아날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음악이나 이상만 좇으며 살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전부가 될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신인 시절에 대표님께서 제게 “힘드니?”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재미있는데요”라고 했더니 그러시더라고요. 프로는 재미있으면 안 된다고, 항상 괴로워야 한다고.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 그러면 전 그냥 아마추어를 할게요.” 솔직히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괴로운 게 프로라면 전 그냥 아마추어로 남고 싶어요. 

최백호 전 그렇게 생각해요. 슬픈 노래를 부르더라도 본인이 부르면서 즐거워야 해요. 그런데 내가 말은 음악을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늙을 때까지 못 버린 거잖아요. 아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 


- 최백호 선생님께서는 하고 싶은 게 무척 많고 실제로 많은 걸 하시는 분입니다.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여셨고 영화 시나리오도 쓰셨다고요. 무명 가수들의 이야기가 있고 SF도 한 편 완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최백호 하하, SF가 정말 기가 차요. 


- 그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최백호 선생님께서 쓰신 SF는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최백호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돼서 다들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예요. 말도 아니지. 

아이유 하하하. 

최백호 딸아이가 영화를 해요. 그래서 한 번 보여줬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안 될 거 같다고 하더라고. 


- 그럼 아이유에게 질문할게요. 어느 날 문득 음악이 재미없어져서 딴 걸 해야 한다면 뭘 택하겠어요? 

아이유 요리 하고 싶어요. 요즘 쉬는 시간이 많은데 제가 원래부터 취미가 전혀 없어요. 배는 고프고 집에 아무도 없길래 혼자 레시피를 찾아서 만들어봤거든요. 그 맛이 나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글쎄, 음식 맛이 나더라고요? 그다음부터 불고기도 만들고 찌개도 끓이고 스파게티도 해보고... 너무 재미있어요. 음악 외에 시간 보낼 거리를 처음 찾은 거 같아요. 


- 어떻게 보면 음악은 즐거운 ‘일’이 되어버렸잖아요. 일이 아닌 그 외의 즐거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백호 그런데 음악이 이미 있으니까 다른 것도 재미있는 거예요. 음악이 없었으면 뭐든 즐겁지 않았을 거야. 


- 선생님께서는 <다시 길 위에서>에 1977년 데뷔 앨범 수록곡인 ‘뛰어’를 리메이크해 실으셨습니다. 이 곡을 다시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최백호 (윤시내의) ‘열애’를 만든 최종혁 씨가 작곡을 했어요. 원래는 CM송으로 쓸 생각이었다는데 그 멜로디를 제게 준 다른 곡 악보 뒷면에 적어둔 거죠. 이거 내가 가사 붙여서 써야겠다고 했어요. 완성해서 앨범에 싫었지만 당시에는 없던 리듬이고 멜로디라 사람들이 이해를 잘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아쉬웠고 언젠가는 다시 부르고 싶었어요, 아주 젊은 편곡으로. 그러다가 기타리스트 박주원 씨가 연주하는 걸 들었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거야. 말로 씨 스캣도 근사하고. ‘다시 길 위에서’라는 게 결국 35년 만에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는 의미기도 해요. 


- 아이유가 60대가 되어서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 중 한 곡을 골라 리메이크한다면요? 

아이유 일단 ‘좋은 날’은 안 될 것 같고요, 하하. ‘너랑 나’도 안 될 테고. 제 곡을 부르고 싶어요. ‘복숭아’나 ‘길 잃은 강아지’ 같은 걸 좀 더 프로다운 편곡으로. 지금의 부족함을 그때는 채울 수 있겠지요. 

최백호 그래, 내가 ‘복숭아’를 들어봤구나. 

아이유 정말요? 감사합니다. 


- 감히 짐작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60대는 무언가에 도전하기보다는 제자리를 지키는 데 더 관심이 많은 나이일 듯 합니다. 예순둘에 선생님과 같은 에너지를 유지하는 건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어요. 

최백호 저는 제가 가진 게 얼마나 되는지 아직도 잘 몰라요. ‘이만큼 했으니까 쉬자’ 이런 기분도 안 들더라고요. 여전히 매일 새로운 생각을 하고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도 없어요. 그게 너무 좋아요. 영화도 만들고 싶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싶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도전적이고.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하죠 (웃음). 배철수 씨는 매번 그래요. 형 이제 일 좀 그만 벌이라고요. 하지만 내가 그래서 즐거우니까. 아직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요. 


- 1월에는 콘서트가 있으시지요? 

최백호 새 앨범 수록곡 위주의 공연지요. 후배들과 음반 준비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후배라기보다는 뛰어난 음악 선생님들에 가까워요. 공부한 결과를 내보일 수 있는 기회일 거예요. 


- 아이유는 최백호 선배님께 궁금한 게 없을까요? 

아이유 아, 진짜로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최백호 도라지 위스키가 뭐냐고? 

아이유 하하, 아니에요. 도라지 위스키는 이제 뭔지 알아요. 실연은 왜 달콤한 거예요? ‘낭만에 대하여’ 가사 중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이 대목이 진짜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연습하면서 주변의 모든 어른께 여쭤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실연도 달콤해지는 건가 싶어서. 

최백호 젊은이의 실연을 물론 쓰겠지만 그마저 다시 올 수가 없으니까, 나이가 들면. 

아이유 아... 

최백호 우리 나이가 되면 실연을 경험할 일이 없잖아. 그러니까 젊었던 시절의 아픈 기억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 최백호 선생님께서도 후배인 아이유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뮤지션으로서 잘 나이를 먹기 위해서는 어떤 걸 기억해야 할까요? 

최백호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음악 외의 다른 일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게 되고 가끔은 큰 어려움에도 부딪치겠지만 그 때문에 진짜 중요한 걸 놓치면 안 되거든요. 좋은 뮤지션으로서 지금의 음악을 지켰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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