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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GOODBYE
아이유는 언제나 아이유지만, 그녀는 여러모로 어엿한 나이를 맞이할 그날을 기다린다. 지난날의 자신에게 쿨한 인사를 건네고, 다가올 자신을 반갑게 껴안으려는 아이유의 지금을 봤다.
Q. 안녕, 이지동씨(웃음). 아이유 회사의 신입사원 이지동이라는 '부캐'로 임하는 유튜브 콘텐츠, 잘 봤다. 천역덕스러운 회사 직원들과 죽이 잘 맞더라.
내가 평소에도 워낙 상황극을 즐긴다. 같이 임하는 사람들 모두 오랫동안 봐온 사이라 서로 잘 안다. 내가 갑자기 상황극을 시작해도 이제는 주변에서 지체 없이 받아준다(웃음).
Q. '엉망 라이브', '집콕 시그널', 그리고 다른 가수들과 서로 곡을 바꿔 부르면서 토크도 하는 '아이유의 팔레트'까지 작년부터 유튜브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인가 보다.
일에 있어 부지런하긴 하다. 일 말고는 딱히 할 게 없기도 하고. 나는 쉴 때 오히려 지치고, 일을 하면 생각 정리도 잘된다. 신입사원 이지동 콘셉트는 ASMR 콘텐츠를 찍는 날 아침 ASMR을 좀 다르게 풀고 싶다고 생각하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다. 적재 씨와 '집콕 시그널'을 찍다가 서로 즉석에서 편안하게 노래 부르고 의견 주고받는 그 날것의 순간이 너무 즐거워서 '팔레트'로 확장해본 거고. 음악인들끼리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를 때의 매력과 시너지가 있어서 즐겁다.
Q. 3월 25일. 4년 만의 정규 앨범인 5집 <라일락>이 발매된다. 딱 1년 전 우리 인터뷰한 것 기억하나? 그때 '빅 사이즈'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어릴 때와 달리 넓고 큰 이야기, 큰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그 생각을 이번 앨범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메시지의 의미도, 음악의 사운드 폭도, 여러모로 화려하고 다채롭다. 이번 앨범에는 내 자작곡이 없다. 프로듀서 관점으로 보니 아이유 앨범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이유의 자작곡이 들어갈 필요는 없겠더라. 나는 지금껏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담담한 스타일의 음악을 했다. 그게 이번 앨범과는 톤이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내 곡은 과감하게 덜어냈다.
Q. 오, 객관적이고 냉철한 프로듀서의 시각으로 앨범을 매만진 게 느껴진다.
이번 앨범을 사람들이 딱 들었을 때 '아이유가 아주 명쾌한 앨범을 냈어!'라고 받아들여주길 원했다. 귀가 즐겁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재밌어서 참고 들어야 하는 노래가 없는 앨범. 나도 이제 '사람들이 이 곡에는 한 번에 꽂히겠다'라든가 '이 곡은 두세번 들어봐야 정 붙일 수 있겠다' 싶은 판단 정도는 할 수 있는 경력이 됐다. 그리고 나름 알 걸 알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앨범에 수록해야 해', '이건 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작곡이니까 넣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앨범을 만들곤 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거지.
Q. 비유하자면 <라일락>은 독립영화보다 엔터테인먼트 요소 짙은 블록버스터에 가깝나?
독립영화보다 상업영화에 가까울 것 같디는 하다. 내가 큰 콘서트를 준비할 때 기획 단계에서 '무엇보다 오락적으로 완벽한 공연'을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이번 앨범을 바로 그런 관점으로 만들었다.
Q. 그런데 앨범명이 왜 <라일락>인가? 무슨 의미지?
이번 앨범의 주제와 콘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잡혀 있다. 바로 '인사'다. 내 20대에 고하는 인사. 20대를 관람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담은 인사 말이다. 라일락의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이라고 한다. '저는 이제 다음으로 갑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아 인사하면서, 동시에 새롭게 다가올 30대를 향해 인사하고 싶었다.
Q. '나이 시리즈'를 들으면 당신을 추적하기 좋다. 스물셋에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스스로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제법 도발적인 말을 건넨 '스물셋', 스물다섯에는 이제 스스로를 조금 알 것 같다는 '팔레트'를 불렀다. 스물여덟인 작년 '에잇'에서는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졌고 그래서 스물아홉인 지금은 어떤가?
솔직히 말하면 이런 기분이다. '아직도 20대가 안 끝났어? 1년이 더 남았다니!' 20대를 반추하면서 20대의 마지막을 유유자적 보내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살아내야 한다니' 싶기도 하다.
Q. '아직도 20대가 안 끝났다니'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인가?
내가 열여섯에 데뷔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더라. 20대가 더 길게 느껴진달까? 어릴 때 데뷔했어도 사회인이니까 마냥 어린 나이 그대로 굴 수가 없고, 남들보다 어떤 시작점을 몇 년 당겨서 산 거다. 사람들이 내 경력에 비해 나이를 어리게 보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한 해 한 해를 보내며 '아이고, 시간 아깝다'가 아니라 '어서 어엿한 나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 가도 경력으로 보나 실제 나이로 보나 어엿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이.
Q. 돌아보면 당신의 20대는 어땠나? 어마어마했나?
정말 열심히 살았지. 성과도 좋았고. 열심히 한다고 꼭 성과가 따르는 게 아니라는 걸 겪어봤는데. 운이 좋았다.
Q. 아이유가 운이 좋아서 오늘날의 아이유가 된 걸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자체도 타고는 성품이니까. 운으로 받은 성품. 정리하자면 운도 좋았고 나 역시 게으름 피운 적은 없는 것 같다고 총평을 내린다(웃음).
Q. 4년 만의 정규 앨범이라 생각도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반복해서 고민된 부분은 없었나?
스물 셋부터 프로듀싱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나의 색깔'이라는 게 있다. 그 익숙한 색깔로 앨범을 채워 인사를 고할 것인지, 아예 새로운 사운드와 새로운 분위기를 보여줌으로써 '끝과 시작'을 알릴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시간도 오래 걸렸고, 수정 작업도 많았다. 거의 대부분을 늘 작업하던 이들이 아닌 처음 맞춰보는 분들과 했다. 아무래도 길든 짧든 서로 호흡을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Q. 참여 작곡가 중 나얼이 있더라. 드라마틱한 데가 있는 나얼과 담백한 아이유는 의외의 만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앨범 성격을 드고 보니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도.
'딱 들었을 때 시각적 풍경이 연상되는 노래'를 부탁드렸다. 향수가 있는 느낌으로. 나얼 선배님의 곡은 수정 작업 없이 처음 주신 그대로 갔다.
Q. 당신의 노래 가사 중 '물기 있는 여자'라는 구절이 있지. 1년 전 인터뷰 때 '아이유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가끔 찾아오는 사랑이나 야망'을 꼽았다. 최근 아이유에게 도사리는 야망의 기운을 느꼈나?
목표가 자주 생기는 인간이라, 이루고 싶은 게 있을 때면 느낀다. 앨범 낼 때는 무조건 나만의 목표가 있고, 내가 만족하기 전까지는 절대 앨범 안 낸다. 지금 나의 목표이자 야망이라면 '나만 만족하고 끝이 아니라 사람들 역시 듣고 싶은 노래여야 해!' 하는 것. 한마디로 대중성을 잡고 싶다. '아이유의 이야기니까 한번 들어볼까?'가 아닌, '정말 좋아서 찾게 되는' 음악 말이다.
Q. 누군가의 행보를 보면서 '저 사람 참 야망 있다' 느낄 때가 있나? 그 사람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있다. 우리 아빠(웃음). 아빠한테는 하나를 이루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관심사도 특기도 계속 추가 중이고, 여튼 뭔가가 자꾸 생긴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Q. 아, 귀여우시다는 아이유의 아버지?(웃음)
아주 귀여우시다. 내가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 '아빠, 만족이라는 걸 좀 해봐' 하면서 구박하기도 하지만, 아빠가 그런 사람이어서 좋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Q. 아버지는 욕심이 많다기보다는 에너지가 많은 분이 아닐까?
맞다. 나도 아빠의 피를 물려받은지라 끊임없이 목표가 생기지만, 나는 아빠처럼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하지는 못한다. 우리 아빠는 명쾌한 승부사다. '내가 용돈 넉넉히 드릴테니까 좀 가만히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아?' 하면 '돈 문제가 아니야' 하신다.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과 돈은 모양이 다르다는 거다. 내가 원하는 건 동그라미인데 별 모양으로 틀어막는다고 해서 메워지는 게 아니라고.
Q. 강연하셔도 좋겠는데? <어린 왕자>에 등장할 것만 같은 대화 토막이다. 아버지와의 대화 기억나는 거 또 뭐 있나?
아빠는 자기 전에 무슨 생각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자기 전에 별별 잡생각을 많이 한다. 대개 일 생각 아니면 작은 아쉬움이나 걱정들이다. 아빠는 이런 생각을 한단다. '누가 갑자기 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대라고 하면 뭘 대야 하지?' 왠지 불시에 대답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미리 정해둔다고.
Q. 어젯밤에 나는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다. '로또 1등 당첨되면 돈을 어떻게 쓸까 계획 짜보고 있는데, 돈이 모자라요.'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런 거 귀엽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삶을 제대로 사용하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Q. '야망'이라는 말에 '아버지'를 답할 줄은 몰랐다(웃음). 아이유를, 인간을 촉촉하게 만드는 '사랑' 앞에서는 사랑을 줄 때와 받을 때 당신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나?
두 경우가 꽤 다르다. 사랑을 받을 때는 좀 머쓱해진다. 팬들에게도 다정하게 대하는 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점차 달라졌다. 지금 사랑한다고 표현 못하면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내가 먼저 시작한 사랑을 할 때는 앞뒤 안 가리고 쏟아붓는 스타일이다.
Q. 사랑을 줄 때 더 자연인 이지은다운 면이 나오나?
마음이 더 편하지. 주는 건 편한 일이잖아. '받아, 이거 내 마음이야'하고 그냥 주면 되니까. 사랑을 받을 때는 그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라 몸이 배배 꼬이는 기분인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누가 사랑을 줄 때 잘 받는 게 곧 사랑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Q. 애착을 쏟는 대상이나 물건이 있나? 그것도 사랑의 행위인데.
내가 물건에 애착과 욕구가 별로 없다. 그래서 가지고 싶은 게 많은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을 보면 부럽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가지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의 피는 그만큼 빨리 도는 것 같거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나에겐 그런 애착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자주 생기지 않기 때문에, 한번 생기면 그만큼 변하지 않은 채 단단하게 간다. 그런 게 생기면 일단 너무 반갑다. 잴 것도 없이 내 몸과 생각이 움직인다.
Q. 곧 대중 앞에 선보일 당신의 가장 큰 이슈는 새 앨범이지만, 사실 이야깃거리가 많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이 3월 31일에 개봉하고, 작년에는 박서준과 이병헌 감독의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곧 영화 <브로커> 촬영에 들어간다고?
이병헌 감독님 영화는 크랭크인은 했는데 아직 촬영분이 남았다. <브로커>는 감독님과 미팅만 했고, 아직 리딩 시작을 안 했다. <더블유>가 발행될 즈음엔 첫 리딩을 했으려나? 조만간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선배님들과 인사 나눈다. 설렌다.
Q. 배두나에 대한 아이유의 마음은 작년 <더블유> 인터뷰에서 자세히 밝혔으니까 이번엔 생략하겠다(웃음). 감독과 당신이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궁금하다.
영상 통화로 한 번, 직접 한 번 만났다. 내가 생각한 내 역할과 감독님의 생각이 얼마나 같은지, 대본에 표현된 디테일들은 어떤 의미인지, 질문이 많은 인간이라 감독님을 좀 귀찮게 했는데 다행히 재밌게 받아들여주셨다.
Q. 어떤 질문을 던졌나?
음, 감독님이 가장 오래 생각하시고 답한 질문은 어떤 대사에 관한 거였다. 그게 극 중 내 인물의 말인지, 아니면 감독님이 인물의 입을 빌려 하고 싶은 말인지 궁금했다. 그 질문을 흥미로워하면서 다음에 만날 때 대답해주겠다고 하셨지.
Q. 그게 왜 궁금했을까?
조금 물음표가 생기는 대사였다. 연기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게 인물에게 어느 정도 뿌리가 있는 말인지 알고 싶었다. 그냥 쓱 지나가듯이 할 것인지,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하니까.
Q. 당신도 아티스트니까 알 것이다. 창작자의 모든 부산물에는 그 자신이 어느 정도 투영될 수밖에 없는 걸. 물론 아이유는 자기 노래를 하는 가수이니 에둘러 말하지 않고 1인칭으로 고백한다. 이를테면 '팔레트'에서는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라고 하지.
다만 '촌스럽다'는 그 기준은 아무래도 타인의 기준이겠지. 나는 이런 말을 곧잘 들어왔단 말이다. '그게 정말 예뻐? 그거 촌스러워.' 그런 시선에 대해 내가 별난 게 아니라거나 그건 촌스럽지 않다고 항변하기보다 '응, 그래'라고 얘기한 거다. '그래 내가 좀 촌스러운 걸 좋아해, 좀 탁한 걸 좋아해, 유치한 걸 좋아해. 내 눈엔 그게 예쁜데?'라고.
Q. 이번 앨범에 대해서는 타인들의 기준도 충족시키고픈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것 같은데, 통했을 때와 기대만큼 통하지 않았을 때의 경우를 상상하기도 하나?
그런 상상은 데뷔한 이후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것 같다(웃음).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게 들어맞았을 때의 희열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좋은 순간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딱히 즐거움이 커지는 게 아니더라. 결국에는 이렇게 정리된다. '그거 너 혼자 한 일 아니야. 그렇게 자축할 것 없어.' 나는 앨범 발매 순간에 혼자 있는 편이다. 초반 반응 한 번 딱 보고 이후부터는 폰을 잘 들여다보지 않으려 한다. 세상에 내놓은 후부터는 이제 또 다른 다음으로 가야 한다고 다짐하는 연습을 오래 했다.
Q. 받는 걸 잘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는 면과 일맥상통하는 증상인가?
그렇다. 그래서 관점을 바꾼 게, 나는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 만들고 나서의 성과를 두고 즐거워하려면 그때는 늦은 시점이고, 만드는 과정에서 즐거움의 총량을 누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내 의지대로 모든 일을 해내려 하고.
Q. 결과가 바람에서 빗나갔을 때 실망할 자신을 보호하지 위한 장치로 나름 현명한 솔루션을 찾은 건가?
솔직히 말하면, 내 예상에서 크게 빗나간 경험이 많지 않다. 그러니까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거다. 그 점에 대한 대비를 늘 마음속으로 한다. 두려움이 커지기도 하고.
Q. 이번에도 대비하고 있겠군. 그러니까 나는 지금 거사를 앞두고 한편으로는 마음의 대비 중이기도 한 아이유와 만나고 있다.
내가 타율이 좋을 떄 신나서 경거망동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타율이 안 좋을 때도 '그래 그럴 수 있지'하고 넘기는 사람이어야 '말이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나? 기쁠 만할 때 기뻐 날뛰는 타입이 아니라면 실망할 만할 때도 타격이 크지 않아야 보상이 성립 되지. 내가 잘 된 게 내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운이 컸다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할 일도 없다. 설사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힘들어할 타입도 아니다.
Q. 이 긴장되는 시간도 지나고, 활동 결과가 어느 정도 정리됐을 2021년 연말로 타임리프를 해보자. 서른이라는 어엿한 관문을 앞둔 스물아홉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상태이길 바라나?
어릴 적부터 '서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스물'은 너무 가까워서 내가 포켓몬 진화하듯이 진화해 있을 것 같지가 않았고, '서른'은 좀 머니까 막연하게 멋질 거라 생각했다. '으아아아!' 할 수 있길 바란다(웃음). '시험 기간 끝!' 할 때처럼. 살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뻤던 일이 손에 꼽는다. 지금 바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세 번인가?
Q. 나라를 되찾은 사람처럼 해방감을 느끼고, 아무런 거리낄 게 없는 수준의 순도 높은 기쁨을 말하는 거겠지? 그 세 번의 기억이 뭔가?
최초의 경험은 중학교 때 중간고사를 마친 후, 내가 그때까진 공부 열심히 했거든. 시험 다 보고, '으아! 이제 롯데월드 갈 수 있다!' 자유란 이런 거구나 미쳐 날뛰는 기분이었던 걸 기억한다. 두 번째는 내 콘서트에 지오디 선배님들이 게스트로 섰을 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열렬한 팬이 되게 만든 게 지오디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이번 앨범 가사 작업을 마쳤을 때다. 폰을 소파에 집어 던지면서 외쳤지. '나 다 했다!' 아무리 푹신한 소파라도 거기에 폰을 던지다니, 웬만하면 그런 과격한 행동 안 하는 사람이다 내가(웃음). 20대를 마무리하는 순간 그런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
Q. 이번 앨범 수록곡이자 1월에 선공개된 싱글 'Celebrity'에서 당신은 별난 인간 취급을 받아온 가까운 친구를 생각하며 가사를 썼다. 너는 별난 게 아니라 별 같은 사람이라고, 아름답고 멋지다고. 아이유가 아이유에게 '너 좀 멋진데?' 할 만한 것은 없을까?
사실은…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나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 이런 얘기 평소엔 내 입으로 잘 안 한다 내 멋짐을 느낄 일도 별로 없고. 이게 나이 들어 생긴 변화인가 싶다. 이번 앨범 제작 때 해내야 할 일이 많았다. 처음 작업해보는 이들과 호흡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트랙의 장르가 다르다. 장르가 제각각인 와중에도 관통하는 시대적인 사운드랄까, 키워드는 있다고 본다. 그건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분들이 느낄 수 있을 거다. 큰 프로젝트라 좀 벅찼다. 내가 못해낼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걸 결국 완성했다는 데서, 이런 느낌이었지. '나 좀 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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