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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사랑, 이지은의 계절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지만, 가끔 그렇게 믿고 싶게 만드는 이가 있다.

지난 여름, 아이유는 <호텔 델루나> 속 장만월을 통해 '환상적인 계절' 이지은을 펼쳐 보였고, 우리는 두 팔 벌려 반겼다.

독보적 브랜드인 아이유와 이지은이 선보일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며.

구찌를 입은 그날 또한 모든 이의 페르소나, 그 자체였으니.

 

Q. 아이유는 계절의 영향을 받는 사람인가요?

A. 봄가을은 좀 타는 것 같아요. 분위기가 달라지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도 해요.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선 요즘이 딱 그런 시기 같아요. 달라진 계절을 느끼면 멍해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상념이 들기도 해요.

 

Q. 오늘 촬영은 어땠어요? 마침 서늘해진 가을 날씨와 유럽풍 정원, 고풍스러운 구찌 의상까지. 여러모로 <호텔 델루나> 속 장만월이 연상됐어요.

A. 그거 아세요? 오늘 촬영한 곳도 <호텔 델루나> 촬영지 중 한 곳이에요. 지난번에 왔을 땐 너무 더웠는데 오늘은 선선하네요. 계절의 변화를 느꼈어요.

 

Q. 아이유에게 2019년은 어떤 계절과 같나요?

A. 연초엔 작년부터 계획한 일이 많이 치열한 한 해가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호텔 델루나>의 분위기 때문인지 예상보다 편안한 계절 같아요. 흘러가듯 할 일을 해나가고 있달까? <호텔 델루나>를 하는 동안 행복했거든요. 이 작품을 하면서 만난 사람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었어요. 비현실적이다, 생각이 들 만큼요. 기적 같은 일이죠. 동화 같은 6개월이었어요.

 

Q. 장만월과 <호텔 델루나>를 향한 아이유의 애정은 모든 사람이 느꼈을 거예요. '장만월'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촬영 현장 사진을 직접 올리기도 했으니.

A. 모든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동하는 작품이었어요. 배우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너무 소중했죠. 그래서 제작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장만월 SNS 계정을 만들고 애정을 담아 운영했어요. 모두가 즐거워했고, 적극 협조해줬어요.

 

Q. <호텔 델루나>의 결말에 대한 반응이 다양해요. 긍정적 의미로요. 장만월을 연기한 배우로서 결말을 어떻게 생각해요?

A. 처음 결말을 알았을 때 '새드 엔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쩌면 '해피 엔딩'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대본을 100번쯤 읽었는데, 보면서 자주 울었어요. 어떤 감정을 꺼내고 어떤 마음을 삼켜야 하나, 고민이 많았거든요. 장만월과 삼도천을 건너 저승으로 가는 '호텔 3인방'은 그 순간을 짧게는 100년, 길게는 1300년간 기다린 사람들이잖아요. 구찬성(여진구)을 만나 삶다운 삶을 경험했지만 그들과 찬성의 시계는 다르잖아요. 찬성과 함께한 몇 개월의 행복한 기억 때문에 떠나지 않는 것도 어쩌면 새드 엔딩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Q. 마지막 회 결말 장면에 흐른 OST를 직접 불렀죠. 미발매곡인 그 노래를 들으며 아이유의 <호텔 델루나>를 향한 마음을 느꼈어요. 제목부터 'Happy Ending'이라니.

A. 직접 작사한 노래예요. '저 만월이는 해피엔딩을 원해요'라는 의미로 12회 대본이 나왔을 때쯤 마지막 장면의 OST로 써주셨으면 좋겠다며 감독님과 작가님께 그 노래를 추천했어요. 사실 저는 되도록 제가 출연한 작품의 OST에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제 보컬을 들으면 가수 아이유의 이미지가 떠올라 작품의 감정선이 흐려질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음원이나 음반으로 그 노래를 공개할 생각은 없어요. <호텔 델루나>의 마지막 장면에만 남겨두고 싶어요.

 

Q. 판타지적 캐릭터 장만월은 가수 아이유와 배우 이지은이 쌓은 커리어 덕분에 자연스럽게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해요. 한 평론가는 "장만월은 가수 아이유의 존재감 안에서 조용히 성장하던 배우 이지은이 아이유와 만난 교차점이다"라고 평했고, <호텔 델루나>를 연출한 오충환 감독은 제작 발표회에서 "아이유가 아니면 이 작품을 하지 말자, 생각했다"라고 말했고요.

A. 처음 섭외 연락을 받고 <호텔 델루나> 제작진과 미팅을 하러 갔을 때 감독님이 그 말씀을 하셨어요. "세트장을 초현실적 공간처럼 유니크하게 만들 건데, 이건 가수 아이유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습과 어우러질 거다. 그리고 한 회에만 헤어, 메이크업, 의상이 자주 바뀌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어색하지 않게 소화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아이유 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유가 엔터테이너로서 보여준 모든 모습을 장만월 캐릭터에 투영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보여주고 싶다"라고요. 사실 출연을 고사하러 나간 자리인데, 반대로 확신이 생겼어요. 지금은 저를 캐스팅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커요.

 

Q. 아이유는 독보적인 브랜드가 됐어요. 대중이 음악 방송에서 소녀다운 노래를 하는 모습과 1980년대 산울림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연달아 봐도 이질감이 없죠. 게다가 배우로서도 안착했고요. 말 그대로 '뭘 해도 되는' 국내 몇 안 되는 스타죠.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이유는 지금이 절정이라고 생각하나요? 혹은 더 보여줄 게 남았나요?

A. 절정이지 않을까요?(웃음) 요즘 스무 살 때가 자주 생각나요. '하루 끝'이란 곡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당시 김이나 작사가님과 나눈 대화가 떠올라요. 제게 "지은아, 너는 앞으로 뭐 하고 싶어?"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활동이 끝나면 아이돌다운 '반짝반짝함'은 이제 끝 아닐까요?" 그랬어요. 제가 그렇게 큰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게 그때 끝일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스물 일곱이 된 지금 기자님한테 "지금이 절정일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으니까, 저는 그때보다 7년이나 보너스를 얻은 거잖아요. 요즘은 정말 즐기면서 일하고 있어요.

 

Q. 뮤지션 아이유와 배우 이지은을 스스로 분리하는 편인가요?

A. 딱히 분리하지 않아요. 사실 배우 활동명도 아이유로 쓰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그런데 아이유는 가수로 유명한 거니까 이지은이라는 이름을 써야 제 연기를 보는 사람도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존중해 따로 쓰고 있는 거예요. 이제는 정리해야 될 때가 온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 "이지은으로 할 거야? 아이유로 할 거야?"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저는 둘 중 어떤 것도 상관없거든요. 저는 그냥 저예요.

 

Q. 아이유의 음반 활동은 작년 10월 발표한 싱글 <삐삐>가 마지막이었어요. 다음 음반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A.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에요. 곡은 거의 완성한 상태고요. <호텔 델루나>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제가 10대 때 보여준 판타지적 요소가 담긴 곡도 있어요. 그리고 요즘 쓴 가사 중 맘에 쏙 드는 구절이 있어요. "하루 정도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노랫말. 어느 순간부터 행복에 집착하며 더 피로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조바심도 들고요. 그런 맘을 담아 쓴 곡이에요. 이번 앨범의 키워드는 '사랑'이에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더러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앨범 발매 후 콘서트에 오면 사랑에 빠져 돌아가게 될 거예요.

 

Q. 뮤지션과 배우 외에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A. 제작자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저와 음악적으로 잘 맞는 뮤지션의 앨범을 프로듀싱해보고 싶어요. 저는 아이돌부터 언더그라운드까지 국내 모든 신인 뮤지션의 음악을 꼭 들어보려고 해요. 그러면서 좋은 의미로 예의 주시하는 가수도 생겼고요. 누군지는 말 안 할래요.(웃음)

 

Q. "지금이 참 좋은 시절이다." 4년 전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에요. 그렇다면 지금은 아이유에게 어떤 시절인가요?

A. 제일 좋은 시절?(웃음) 확신할 수 있는데, 저는 나이 들수록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땐 행복할 틈이 없었거든요. 해야 할 일도, 증명해야 할 것도 많았으니까요.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어요. 저는 자기만족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거든요. 그 기준이 높아 저를 혹사시킨 것 같고요. 그러다 스물다섯 살 때 <팔레트>라는 앨범을 내고 맘이 바뀌었어요. 이후 좀 더 편안한 모습을 곡에 담기 시작했고, 저도 좀 더 맘을 내려놓게 됐어요. 요즘은 사랑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연애 감정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 일에 대한 사랑, 하루에 대한 사랑,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사랑 등, 다채로운 사랑을 음악에 담고 있어요. 지금 준비하는 앨범도, 공연도, 저를 좋아해주는 팬들에게도, 나아가 자신에게도요.

 

Q. 지금 아이유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사랑이 아닐까요? 인터뷰 중간중간 언급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호텔 델루나>와 새 음반에 대해 말하는 아이유의 눈빛과 말투에서 온기와 애정을 느꼈어요.

A. 저 정말 '이런 사람 아닌데',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이렇게 됐어요. 이런 생각할 때면 저도 나이가 드는구나, 싶어요. 어쨌든 기분 좋아요. 축하받을 일인 것 같아요.

 

Q.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A. 지금 처음 얘기하는 것 같은데, 뮤지션으로서 공연으로 한 획을 긋고 싶어요. 제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 가장 큰 포부일 거예요. 제가 어디서 '정상에 서고 싶다', '한 획을 긋고 싶다' 이런 말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웃음) 언제부턴가 가수로서 공연의 의미가 남달라졌어요. 그리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종종 그런 사람이 있잖아요. 취향이나 호불호를 떠나서 적어도 빈말은 안 할 것 같은 사람. 개인적으로도, 가수와 배우로서도 그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어요.

 

 

http://www.dazedkorea.com/fashion/article/674/detail.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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